비계급 사회의 원시시대
원시시대란 그 시기를 분명히 하긴 힘들다. 고대 국가들이 탄생하기 이전 시기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문자가 없어서 기록되지 않은 그 이전 시기라 선사시대로 말하기도 한다. 문자의 발달 시기가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원시시대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이 존재하는 유럽은 그 시기를 파악해 볼 수 있지만, 주변 국들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 까닭이다. 선사시대는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마저도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원시시대는 생산력이 워낙 낮은 시대여서 지배 계급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비계급 시대에는 채취, 수렵으로 생활을 이어갔고 농경이 발달하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 일과를 식물을 채취하고 사냥을 하는 것으로 보냈다. 따라서 건축 활동이라는 것이 특별히 있을 수 없었고 기후나 짐승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주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아는 움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대 사회 성립
농사로 정착 생활이 가능해진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야 잉여 먹거리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개인 소유에 대한 개념이 발생했고 지배 관계가 생겨나게 되었다. 계급사회는 메소포타미아 일부 지역과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일강 주변에서 초기 국가 형태가 생겨났고 이집트가 통일 왕국을 성립한 게 기원전 3100년쯤으로 알려져 있다.
수메르 문명이 나타나면서 초기 형태의 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기원전 2350년 아카드 왕국을 시작으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의 왕국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형태는 농사와 가축을 다룰 수 있는 규모의 부족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한다. 부족들끼리의 침략 전쟁이 존재했고, 이긴 부족이 상대 부족을 노예로 삼아 본인들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는 농업 기술의 부재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음을 말해준다. 초기 국가들의 전쟁은 바로 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지배와 피지배 관계들이 발전해 나름의 제도들로 갖춰져 조세 시스템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전제 왕정으로 중앙집권의 정치체제가 이루어졌다. 즉 모든 생산물은 나라에서 지배 계급이 관리했고, 피지배 계급은 농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도시의 출현과 대규모 건축
고대 국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농경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거점으로 도시가 발생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생겨나는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한 시장이 형성되면서 상인이 계급이 탄생했다. 각 도시에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군대들도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일에는 건축이 따른다. 통일왕국 건축은 도시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주거시설을 비롯한 많은 건축이 일정 공간에 집중되었다. 군사 목적의 성곽, 요새로 쓰이는 궁전, 지배력을 상징하는 신전 등의 대규모 건축도 이뤄졌다.
특히 고대 도시의 대규모 신전의 건설에는 많은 건축 자재와 노동력, 건축 기술을 동원하는 힘이 있는 지배 권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잉여 생산물이나 노동력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배 계층을 위해 건축에 노동력이나 기술을 동원할 만큼 그들의 권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지배 계급의 권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건축에는 석공 장인과 노예 또 소작인들의 노동력까지 필요했다. 그리고 건축 재료나 기술은 장인들의 일이었지만, 기획이나 계획은 지식 관료의 몫이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을 관장한 인물은 임호테프라는 최고 계급의 대제사장이었다. 그 당시 지배 계급들은 궁전, 성곽 그리고 신전을 짓는 것에 집중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건축
이집트는 석회암이 풍부해 내구성이 중요한 건축물에 석회암을 사용했다. 지배 계급의 힘이 약하고 인구가 적은 탓에 노동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나무나 흙벽돌 또는 점토를 이용한 건축이 이뤄졌다. 후에 구리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석재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과 도구가 늘어나, 내구성이 필요한 건축물에 석회암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계단식 피라미드인 조세르왕의 분묘 건축을 시작으로 더 큰 석재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생겨나면서 점점 더 웅장한 피라미드들이 건설되었고 그중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무려 146미터나 된다.
고대 이집트 석조 건축의 특징은 신전 건축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원전에 축조된 신전들은 단순한 구조로 큰 석재를 쌓아 올린 것에 불과하다. 석재 재료의 한계와 석재를 다루는 기술뿐만 아니라 건축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건축에 쓸 목재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도 목재가 부족했다. 이들은 주로 점토로 건축을 했는데, 점토를 햇볕에 말려 진흙벽돌을 만들어 사용했다. 또한 구운 점토 타일과 석재로 외부를 마감해 내구성을 보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재보다는 내구성이 많이 떨어지는 탓에 메소포타미아에 남아 있는 고대 건축물은 이집트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요업이 발달한 신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채색 벽돌을 건축에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흙벽돌을 건축에 사용했다. 이들은 농한기에 흙벽돌을 미리 생산해 건축의 노동력을 줄이는 똑똑함을 엿볼 수 있다.
건축에 흙벽돌을 사용한 것은 건축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이유는 그로 인해 자연스레 흙벽돌은 규격화되었고, 일정한 패턴의 균일한 두께의 벽을 쌓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벽체 두게나 쌓는 방식에 따라 하중에 대한 지식도 발전했다. 훗날 고대 로마 건축 기술의 근간이 된 아치, 볼트 축조 기술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